◇ 외팔의 드러머 릭 앨런
공간을 터뜨릴 듯 울려대는 록밴드의 음악. 팔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숨가쁘게 드럼을 두들겨야만 하는 록밴드의 드러머가 외팔이라면? 80년대를 풍미했던 영국 헤비메탈 밴드 데프 레파드의 '릭 앨런'은 놀랍게도 왼쪽 팔이 없는 외팔 드러머이다. 앨런은 열다섯살 때인 78년부터 당시 무명밴드였던 데프 레파드에서 스틱(드럼 채)을 잡았다.
데프 레파드가 세 장의 음반을 연속 히트시키는 동안 드러머 앨런은 힘이 넘치면서도 정교한 리듬의 연주로 명성을 떨쳤다. 앨런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84년 12월. 스포츠카 메니아였던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팔을 어깨부분에서부터 절단해 냈다. 드러머로서 생명이 끝나는가 싶었던 시련이었다.
하지만 데프 레파드가 4년만에 재기 음반을 발표했을 때 그는 여전히 드러머였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오른팔을 이용하는 특수주법을 익혔던 것이다. 물론 한쪽 팔을 잃고 난 후의 드럼연주는 이전에 비해 아무래도 속도감이 덜어지는게 사실이다. 오른팔만 쓰다보니 자연스레 발도 오른쪽을 많이 쓰게 됐다. 드럼 세트도 북의 숫자를 줄여 보통 드러머가 쓰는 것과 차이가 있지만 연주에는 전혀 어색함이 없다.
앨런의 재기는 단순한 연주의 완성도 차원을 떠나 인간의지의 힘을 보여준다. 새음반 홍보차 한국에 들른 앨런의 다음 한마디는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어려움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인간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알기 힘듭니다."
◇ 소울 음악의 천재 레이찰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각장애인으로 일컬어지는 흑인 소울 가수 레이찰스. 그는 공황기에 프로리다 주 흑인 빈민촌에서 성장했는데 다섯 살 때 큰형이 목욕탕에서 익사하는 것을 본 뒤 그 충격으로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그 후 미국 전역을 피아노를 벗삼아 방랑하며 소울 가수로서의 명성을 쌓아왔고, '소울의 천재'라는 음악적 명성만큼이나 숱한 화제를 뿌려왔다. 17년에 걸친 헤로인 중독으로 3번에 걸쳐 구속된 것을 비롯하여, 총 일곱명의 여성과 아홉 명의 자녀를 둔 열정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90년대 초 마약을 끓고 정상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자 PBS 방송국에서 그의 인생을 다큐영화로 제작할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걸어 왔다.
◇ 흑인 팝 음악의 살아있는 신화 스티비 원더
그는 리듬 앤 블루스, 소울 등 미국 흑인들이 창출해 낸 음악 장르를 꽃피운 음악인으로 대중적 인기 뿐만 아니라 음악 전문가들도 그의 천재성에 경탄하고 있다.
60년 열살의 나이에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는 흑인 음악의 메카 '모타운' 레코드에 발탁되면서 독창적이면서도 만인이 공감하는 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노래뿐만 아니라 유명 가수들에게 작곡, 제작을 해주면서 리듬 앤 블루스가 미국 팝송의 중심으로 떠오른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의 독창적인 작품들은 발표할 때마다 그래미상을 석권했으며 펑크, 소울, 프로그레시브 음악과 재즈로도 편곡되는 등 불후의 명곡으로 남아있다. 선청성 시각장애인인 그는 최근에 공연을 통해 인권, 장애인과 관련한 운동의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 손과 발로 소리를 느끼는 청각장애인 애블린 글래니
50여개의 타악기를 한꺼번에 다루는 청각장애 연주자 애블린 글래니. 그녀는 1년에 120여회의 연주회를 갖는 타악기 연주자이며, 빼어난 미모의 여성이다. 그는 갖가지 타악기로 작은 빗방울 소리부터 천둥소리까지 소화해내며, 자신의 연주를 들을 수는 없지만 발과 손끝에 있는 온갖 신경을 동원하여 소리들을 감지한다.
여덟 살 때 귀에 이상이 생겨 열 두 살 때에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그녀는 스코틀랜드의 농촌 출신이다. 지방 중등학교에서 음악공부를 하던 열 두 살 때 친구의 북치는 모습에 반해 타악기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청력문제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솔로 연주가로 데뷔한다.
수많은 콘서트를 영국에서 가졌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필하모니와 협연 연주회도 가졌다. 94년 정상 청력을 가진 레코드 엔지니어와 결혼한 그녀는 인간승리의 한 표상일 뿐만 아니라 청각장애 어린이들의 음악치료법을 지원해주는 '런던 베토벤 기금단체'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이 어떻게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느냐는 주위의 질문에 그녀는 "저는 청각장애인 음악인이 아니에요. 다만 청각에 조금 문제가 생긴 음악가일 뿐이죠"라고 대답한다. 그녀에게도 장애는 단지 조금 불편한 조건일 뿐인 것이다.
◇ 열정적 휠체어 인생으로 새로 태어나는 수퍼맨 크리스토퍼 리브
영화 수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의 초인적인 삶에 대한 열정에 미국민들이 경의를 표하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리브를 표지인물로 다루고 그가 95년 승마 도중 낙마로 장애인이 된 이후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을 크게 소개한 바 있다. 리브는 수퍼맨의 영화배우로서 절정기에 있을 때도 받지 못했던 대접이다.
리브는 사고 후 전미척수마비협회 이사장을 맡아 척수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장애인올림픽에 모범장애인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신불수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리브의 가정이 안정돼 있다는 점도 미국인들이 그를 칭송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92년 결혼한 아내 다나는 사고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은 떠나지 않고 극진히 간호하고 있다.
"우리는 삶에 있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리브에 대해 멋쟁이 배우시절보다 더 위대한 인간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주변사람들의 평가이다.
최근에는 미국의 정치인들이 슈퍼맨 살리기 운동을 앞장서 척추부상자의 치료비를 연간 4억 5천만 달러씩 증액해야 한다고 발의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의회에 추가지원비 1천만 달러를 당당히 요구했다고 한다. 6년 후인 50회 생일 때는 기필코 일어서서 걷고야 말겠다는 리브의 각오를 접하면서 그가 이제야말로 진정한 슈퍼맨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다운증후군을 극복하고 연극배우가 된 파스칼 뒤켄
잘 나가는 세일즈맨 해리의 차에 어느 날 생면부지의 청년이 무단승차한다. "나…나…나, 다운증후군이다."라고 소개하며 오르는 조르주. 영화 <제8요일>의 한 장면이다. 그 다운증후군 역에 감독 자코 반 도마엘이 파스칼 뒤켄을 캐스팅한 이유는 "다운증후군 역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뒤켄을 불러들였고, 이 시도는 성공하여 영화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두 남자가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행복을 발견하는 과정을 지극히 선량하게 그려내 세일즈맨 헤리역의 다니엘 오퇴유와 다운증후군 연극배우 파스칼 뒤켄이 나란히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하였다.
다운증후군의 장애인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어디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시상식 직후 기자회견에서 뒤켄은 선배 배우이자 통역자가 돼버린 다니엘 오퇴유의 어깨에 고개를 비스듬히 기대고 기쁨에 들뜬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매우…매우… 기쁘다. 고맙다."
◇ 사라예보의 연극배우 튜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간판스타로 명성을 드날리던 튜릭. 그는 지난 92년 사라예보 내전 중 그의 집 근처에서 세르비아인이 쏜 총에 맞아 양다리를 잃었다. 그는 죽을 작정으로 두 달 동안을 보냈지만 가족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 휠체어를 타고 연극으로 돌아왔다.
얼마전 연극 '감옥에 갇힌 우부'에서 주연을 맡아 장애의 아픔을 딛고 배우로서의 삶을 재개한 그는 비극의 실체를 세계에 고발했다. 사라예보의 연극배우 튜릭, 그는 전장에 핀 인간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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