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에도 지지 않는 사랑
시골에서 자란 나는 수확기만 되면 엄마를 도와 열심히 새참 준비를 했습니다. 수줍어서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그저 맛있는 반찬 몇 가지를 그 사람 곁으로 밀어주는 것으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얼른 자리를 피하면 동네 어른들은 농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뭘 그렇게 망설여. 이 잘 어울리는구먼..." 이 말에 나도 그 사람도 얼굴이 빨개져서 분위기는 더욱 어색했습니다. 그렇게 그의 마음을 모른 채 혼자서 속을 태우고 있을 때 6.25 전쟁이 났습니다. "정욱아. 잠깐 나와 볼래." 유난히 빛나던 달이 우리의 이별을 짐작한 듯 슬퍼 보였습니다. "나, 군대 간다." 깜깜한 밤하늘에 가득했던 별들이 우수수 쏟아질 것만 같았고, 나는 꾹 참았던 가슴이 메어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정욱아. 나, 너 정말 좋아해. 나 꼭 살아서 돌아올게." 우리는 어떤 약속도 없었지만, 그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가 떠나고 몇 달이 흐르는 사이에 내 몸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에서 자신을 지키고 있듯이 나 역시 아이를 우리에게 아들이 생겼다는 것을 알면 참 기뻐할 텐데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는데 군에서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병원에 도착해서 보니 그의 다리 한쪽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가는 동안 저희에게는 이쁜 딸이 또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봄날 모든 추억을 뒤로하고 남편이 먼저 눈을 감았습니다. "여보. 우리 하늘에서 다시 만납시다." 영영 다시는 오지 못할 그곳으로 남편은 그렇게 떠났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수많은 역경을 맞이하는데 그 어떤 역경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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