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밥에 햄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주장! 햄 대신 돼지고기를....
( 소금 후추 마늘 넣고 밑간을 돼지고기, 김밥 재료중 하나다)
김밥 마는 일은 간단하지만 재료를 준비하는 일은 시간 잡는 일이다. 삶고 볶고 무치고 등등.... 손길 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한 끼 식사용이거나 혼자서 먹으려고 김밥 싼다면 생각 떨어지는 사람이다. 차라리 돈 천원 주고 사 먹는 게 시간절약 플러스 경제적이다.
그런 이유로 요리를 즐겨하는 사람도 김밥 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김밥한번 싸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맛객, 실은 마음의 평정을 위해 김밥을 만다.
무슨 소린 고. 요리를 하는 그 순간은 모든 잡념에서 벗어난다. 수행하는 스님처럼 번민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게 요리다. 집중, 스트레스 해소, 무아지경, 요리를 하면서 얻어지는 것들이다. 그대는 어떨지 모르지만 맛객은 그렇다.
김밥은 시간 잡는 일, 그날은 심신이 좀 복잡해 수행을 하지 않으면 괴로움에 몸부림을 칠 것만 같다. 그래! 요리를 아니 수행을 하자. 짧은 시간으로 만들어진 요리보다 긴 시간 걸리는 김밥이 적격이다.
(여러가지 김밥 재료가 차려져 있다. 시금치, 오이, 단무지, 소시지, 박고지, 돼지고기)
자~ 어떤 김밥을 만들까? 맛객에게 있어 김밥 맛의 원형은 예전에 시골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그 맛이다. 굳이 이름붙이자면 일명 ‘시골김밥’.‘옛날김밥’ 쯤이 적당하겠다. 머릿속 구상이 끝났다면 재료준비를 해야겠지. 시장으로 간다. 벌써 햇김이 나왔네. 비닐봉지 안에 든 이게 몇 장이야? 100장은 넘어 보인다. 아니 딱 100장 들었을 수도 있다. 4,000원 한다.
다음은 소시지, 핑크빛 싸구려 소시지다. 달걀옷 입혀 지지면 그 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최고였는데 어느새 싸구려 소시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참.... 세월이라는 게 뭔지. 아니지 웬 세월 탓? 간사한 게 사람 입맛이지.
예전 핑크빛 소시지 하면 진주햄이 대표주자다.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등, 어린이 만화 종합지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2페이지짜리 진주햄 광고만화. 너무 많이 봐서 지금까지 머릿속에 박혀있는 걸 보면 참 대단한 광고다. 그것도 추억이라고 생각나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신동우 화백의 작품이었다. 통통하고 길다란 소시지가 천 몇 백원.
요즘은 노지에서 기른 시금치가 나는 철이다. 노지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예전 단맛 죽여주던 그 시금치는 아니다. 그래도 하우스에서 길러 키만 크고 맛대가리 하나 없는 물시금치보담 낫다. 검은 봉지에 담아서 1,000원. 단무지 천 몇 백원. 오이 네 개에 1,000원. 당근 3개에 천원. 이제 된 건가? 아참! 달걀은 생략, 요즘 달걀은 먹기가 좀 꺼림칙하다.
또 한 가지 재료가 남았다. 만들려는 김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재료다. 그게 들어가야 맛의 포인트가 된다. 공개는 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재료손질부터 해 보자. 단무지는 물에 씻어 물기를 빼 둔다. 포장지에서 꺼내 바로 사용해도 되지만 김밥의 향기로움이 단무지 냄새에 죽고 만다.
오이는 소금물에 씻어 단무지처럼 길게 썰어서 소금과 설탕 넣고 약간 절인다. 당근은 채 썰어서 팬에 살짝 볶는다. 아, 밥을 지어야한다. 밥 할 때보다 물의 양을 조금 적게 잡고 짓는다. 시금치는 끊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군 다음 깨소금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좀 전에 비공개로 궁금증을 유발했던 재료는 돼지 살코기다.
“돼지 살코기 한 근에 얼마예요?” 묻자 나오는 질문.
“뭐 하실 건데요?”
“김밥 싸려고요”
“갈아드려요?”
간다고? 고기를 갈면 맛이 나나.... 건 그렇고 그렇게 묻는 걸 보면 김밥 싼다고 돼지고기 사 가는 사람은 없나보다.
“아니 단무지 모양으로 썰어 주세요” 한 근에 3,400원.
돼지고기에 소금으로 밑간하고 간 마늘, 후추, 참기름 약간 넣고 버무린 다음 팬에 익혀내면 된다. 김밥에는 이 돼지고기가 들어가야 맛과 씹히는 촉감이 좋다. 요즘은 모든 김밥 집에서 돼지고기 대신 햄을 사용한다.
그래서 그런지 김밥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면 못 들어갈 재료가 들어 간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맛객이 김밥 만드는 걸 본 옆 작업실 선배도 “뭐야 돼지고기도 들어가?” 묻는다. 햄은 되고 돼지고기는 안된다?
햄의 재료가 뭔가? 돼지고기 아닌가? 그것도 품질 떨어지는 잡 부위와 이름도 생소한 첨가물들.... 김밥을 떠나서 생각해보자. 그대는 그대의 자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 돼지고기와 햄 중 어떤 걸 먹이고 싶은가? 설마 햄이라고 대답하는 분 있으세요? 이제 김밥에 돼지고기와 햄 중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 게 나을지는 뻔할 뻔자다.
또 생각해보자. 김밥 집에서는 왜 햄을 사용할까? 그것도 뻔할 뻔자 아닌가? 원가절감, 고기보다 싸니까 사용하는 이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김밥에 햄 들어간다고 생각 없이 따라하지 말고 집에서 만드는 김밥에는 고기를 넣었으면 한다.
- 돼지고기 대신 햄 들어가는 요즘 김밥
밥이 됐나 확인해보니 세상에나 네상에나 머리에 뚜껑 열릴 일이 벌어졌다. 아니 뚜껑이 열렸다. 분명히 닫았던 밥통의 뚜껑이 활짝 열려있는 게 아닌가? 밥을 보니, 물기는 없고 쌀은 설익어 우유 빛을 하고 있다. 된장! 천하제일의 김밥을 만들려고 했는데.... 뭐 할 수 없지. 물을 조금 붓고 가스불로 밥을 완성 지었다. 다된 밥에 참기름과 깨소금, 매실원액을 조금 넣고 골고루 비볐다.
(완성된 김밥)
만약,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열사람이 김밥을 만다면 그 맛은 똑 같을까? 다를까? 당연히 다르다. 김밥에 들어가는 밥의 양이 각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불과 밥알 몇 십 개의 차이만으로도 김밥 맛은 좌우된다.
또 김밥을 말 때 주는 손의 힘도 중요하다. 간혹 김밥을 너무 꼭 힘줘 말아서 밥알이 숨 쉴 공간도 없을 정도로 단단한 것을 먹을 땐 뱉어내고 싶을 정도다. 적당하게 말아서 밥알과 밥알 사이에 숨구멍을 만들어 주고 재료들 사이에도 적당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 김밥을 먹으면 밥 사이에 포위되어 꼼짝도 못하는 게 아니고 각각 굴러다닌다. 이게 맛있는 김밥의 조건이다.
김밥을 만들길 잘했다. 어느새 잡념은 사라지고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도 아직 수행이 덜 되었나 보다. 김밥을 썰 때는 특히 더 집중을 해야 하는데 순간 잡념이 들자 김밥 옆구리가 터져버린다. 아뿔사! 집중! 집중! 손에 힘을 빼고 기를 모아 재빨리 썰어야 터지지 않는다.
(박고지 김밥)
이왕 만든 깁밥 박고지 김밥도 만들자. 올 10월 서산에서 가져온 박으로 만든 박고지. 전날 미리 물에 담가 불려 두었다. 물에 간장과 소금, 꿀, 매실원액을 넣고 국물이 없어질 정도로 은근하게 조려서 식으면 국물을 꼭 짜서 당근과 오이와 함께 싸면 된다. 박고지의 쫄깃함이 매력적인 김밥이다. 향긋하고 새콤달콤한 맛의 여운이 남는다.
(9월에 아직 여물지 않은 박을 얇게 잘라 말린 박고지를 ,간장과 설탕에 조려서 김밥재료로 사용한다)
소풍날이나 특별한 날 즐겼던 김밥이 이젠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다. 특히 주문 후 1~2분 만에 나오는 신속성으로 인해 바쁜 현대인과 더욱 친숙하게 되었다. 국물 음식과도 잘 어울려 오뎅 국물이나 우동 먹을 때, 라면 먹을 때 같이 먹으면 부족하기 쉬운 영양을 보충해 줄 뿐 아니라 세상없이 든든해진다.
- 전문성 없는 김밥 전문점
김밥 집은 전국에 어딜 가든 손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사실 맘에 드는 집은 별로 없다. 원가절감에 치중한 나머지 갈수록 재료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김만 해도 그렇다. 향긋함이 우수한 까만 김에서 언젠가부터 한눈에 봐도 질이 떨어져 보이는 연두 빛 나는 김으로 바뀌었다. 그래서는 김밥은 싸구려 음식이라는 인식만 심어줄 뿐이다.
전국의 어딜 가든 김밥 집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들어가는 재료까지 판박이다. 왜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한 김밥은 개발되지 않는 걸까? 그런 점에서 충무김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부들이 뱃일을 할 때 김밥을 먹었는데 쉽게 상하는 단점이 있었다. 궁리 끝에 김밥과 재료를 분리하기 시작한 게 충무김밥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충무김밥은 지역에서 흔하게 나는 재료를 이용한 음식일 뿐 아니라 그 고장 사람들의 삶까지 깃든 멋진 향토음식이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밥이다)
몇 달 전 문광부에서 발표한 100대 민족문화상징에 김밥이 후보에까지 올랐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비빔밥, 불고기 등과 함께 나란히 섰다는 반증이다. 더 이상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끼니를 때우는 음식이 아니고 국민음식이 된 김밥, 지금 이 상태로 외국인에게 자신 있게 내 놓을 수 있을까. 해외 진출, 더 나아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김밥의 질 개선을 통해 맛의 고급화를 해야 한다. 초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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